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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취하는 원룸은 확실히 배려 없는 공간이다. 서너 걸음으로 동선이 해결되기에 변기가 막히면 역한 냄새가 먹고 자는 공간으로 날아든다. 게다가 벽 너머의 소음과 반지하라는 위치 덕에 늘 긴장 상태다. 자취생에게 가장 배려 깊은 공간은 카페, 특히 스타벅스다. 어느 지점을 가든 하이톤의 점원이 세심하게 커피 취향을 배려해준다. 덕분에 나는 그냥 커피가 아닌 저지방 우유를 넣은 카페모카를 시킨다. 또한 그곳은 누구나 앉아서 커피를 마시는 민주적인 공간이다.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도, 거대한 체격 덕에 두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남자도 모두 같은 공간에 있다. 과장을 보태자면 5000원가량을 지불하고 자유와 민주주의와 배려를 보장받는다.

 

하지만 이곳은 누군가에게는 잔인한 공간이었다. 노숙자에게 인문학을 가르치는 곳에서 자원 활동을 하던 때의 이야기다. 일찍 강의실에 도착한 탓에 인근 스타벅스로 들어갔다. 창문 너머로 함께 수업을 듣는 노숙자분이 보였다. 반갑게 손을 흔드는데 웬걸, 못 본 척 지나간다. 나중에 그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한다. “나는 원래 거기 지나갈 때 잘 안 쳐다보고 지나가서 아는 척을 하는 게 민망했어.” 사실 그 스타벅스의 건너편은 무료급식소가 있는 노숙자 ‘게토’였다. 오직 밥을 먹기 위해 기나긴 줄을 서는 사람에게 스타벅스는 가깝지만 외면할 수밖에 없는 공간이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배려다. 돈만 내면 누구나 똑같은 배려를 받지만 돈을 내지 않은 자는 배려를 받을 수 없다는 단순한 논리 속에서 배려와 배제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원룸에서 배제당한 나는 카페에서 알량한 배려를 받고자 했다. 하지만 그곳에서조차 배제당한 사람은 어디로 가야 할까.

 

황정은의 소설 <백의 그림자>에 등장하는 전자상가는 40여년의 세월과 함께 사람들 저마다의 삶이 스며든 소우주다. 특히나 오무사라는 전구 가게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오무사에서는 전구를 몇개 사든 한개씩 더 넣어준다. 가지고 가는 길에 전구가 깨지거나 불량품이 있을 수도 있음을 배려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인간적인 배려의 공간은 전자상가가 철거되면서 사라진다.

 

이처럼 사라진 공간은 늘 그래왔듯이 스타벅스와 같은 자본주의적 배려의 공간으로 대체될 것이다. 언제 배제될지 모른다는 감각을 잊고자 나는 스타벅스로 향해 기꺼이 내 소비능력을 확인한다. 나를 회피하던 노숙자분의 눈빛이 사실은 원룸에서의 내 눈빛과 같은 종류임을 알면서도. 나의 자유와 민주주의와 배려가 그 공간을 떠나는 순간 덧없이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이우연 인천 부평구 산곡2동


[출처] 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71556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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