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고리촌충
삼겹살은 돼지의 배쪽 특정부위에 있는 고기를 지칭하며, 살코기와 지방이 세 번 겹쳐져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회식' 하면 삼겹살이 떠오를 만큼 한국인에게 친숙한 음식인데, 삼겹살이란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닐 것이다.
이 삼겹살을 맛있게 먹는 방법은 적당히 익혀서 먹는 것일 테지만, 간혹 삼겹살을 타기 직전까지 구워서 먹는 사람이 있다. 이분들은 왜 그러는 걸까? 물론 바짝 익힌 걸 좋아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어려서부터 들은 교훈 때문에 그런다고 했다.
삼겹살은 바짝 익혀서 먹어야 한다는 교훈 말이다. 이 교훈은 대체 왜 생겼으며, 지금도 유효한 걸까?
1갈고리촌충
이게 다 갈고리촌충(Taenia solium) 때문이다. 돼지고기를 덜 익혀 먹으면 갈고리촌충에 걸릴 수 있다고 예전에 배웠으니까. 갈고리촌충은 말 그대로 머리 부위에 갈고리가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
쇠고기 육회를 먹었을 때 걸릴 수 있는, 머리에 갈고리가 없는 민촌충(Taenia saginata)에 대응해서 갈고리촌충이라 부르는데, 26개의 갈고리 때문에 꼭 왕관을 쓴 것처럼 보인다. 사람 몸 안에 있는 갈고리촌충은 보통 2~3미터 정도까지 자라며, 이때가 되면 대변으로 알을 내보내거나 알로 가득찬 조각을 대변과 함께 밖으로 배출한다.
갈고리촌충은 오직 사람에서만 어른이 되어 알을 낳을 수 있는지라 이것의 알이 발견됐다는 건, 그곳이 아무리 외진 곳이라 해도, 사람이 와서 일을 봤다는 분명한 증거가 된다.
갈고리촌충은 대개 증상이 없고, 있어봤자 배가 좀 아프거나 설사가 있는 정도인지라 기생충의 조각을 보고 나서야 "내 안에 뭔가가 있구나"를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변기 안을 시시때때로 봐야 하는 건 이 때문이며, 변기 안에 나뭇잎 같은 게 떠 있는데 그게 꿈틀댄다면 그건 십중팔구 기생충이다. 변기물이 출렁거려서 움직이는 것과 감별해야 하는데, 아무튼 그런 게 나오면 징그럽다고 바로 물을 내리지 말고 젓가락으로 담아 기생충과로 가져와 주시면 좋겠다.
진단은 물론이고 치료도 바로 할 수 있으니까. 갈고리촌충은 약에 잘 들으니 무서워할 일은 없다.
그런데 이게 돼지랑 무슨 상관일까? 돼지는 갈고리촌충의 유일한 중간숙주이자 인체 감염원이다. 돼지를 지저분한 환경에서 키우는 경우 돼지가 사람의 변과 접촉하게 되고, 똥오줌 안 가리는 돼지의 식습관 탓에 갈고리촌충의 알이 돼지에게 들어간다.
돼지 몸 안에서 부화된 유충은 혈류를 타고 여러 장기로 가며, 그곳에서 머리를 수줍게 감춘 채 종숙주인 사람에게 먹힐 때를 기다린다. 사람이 먹는 건 주로 돼지의 근육, 삼겹살 같은 걸 덜 익혀 먹게 되면 근육 안에 있던 갈고리촌충의 유충이 들어가 숨겨놨던 머리를 내밀고 성충으로 자라는 거다.
과거 똥돼지라고, 사람의 변을 먹여서 돼지를 키울 때가 있었다. 이 경우 돼지의 근육에 있던 갈고리촌충의 유충이 사람에게 들어가 성충이 되고, 그 사람이 변을 볼 때 나오는 알을 돼지가 먹어 유충이 근육으로 다시 갈 테니, 갈고리촌충으로서는 이때가 호시절이었다.
제주도에 갈고리촌충이 많았던 것도 가장 최근까지 똥돼지를 키웠기 때문이지만, 돼지에게 사람의 변 대신 위생적으로 만든 사료를 주기 시작하면서 갈고리촌충은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거의 멸종 단계에 이른다.
2갈고리촌충 보다 유충이 더 위험 - 유구낭미충증 (cysticercosis)
그런데 이상하다. 갈고리촌충 때문에 삼겹살을 바싹 익혀서 먹게 됐다니, 증상도 없는 기생충이 뭐가 그리 무섭다고? 하지만 문제는 성충이 아닌 유충인 유구낭미충(Cysticercus cellulosae)이다.
갈고리촌충의 조각이 항문으로 기어나온다고 해보자. 알로 가득찬 조각이니만큼 항문 근처에 알이 묻는다. 조각이 기어나오면 항문 근처가 가렵고, 옷 위로 긁는 게 감이 안 좋으니 손을 집어넣어 긁다 보면 손에 알이 묻을 수가 있다.
그 손으로 과자를 집어먹으면 과자와 함께 갈고리촌충의 알이 입안으로 들어간다. “너도 먹어”라며 다른 사람에게 과자를 먹여 준다면, 그 사람에게도 알이 들어간다. 이런 것 말고도 갈고리촌충에 감염된 사람의 변을 비료로 써서 키운 상추를 사람이 먹을 때도 알이 들어갈 수 있다.
어떤 경로로던 갈고리촌충의 알이 사람에게 들어가면 돼지에서 일어났던 것과 같은 현상이 사람에서도 일어난다. 즉 유충이 사람 몸 안에서 부화해 혈류를 타고 여러 장기로 가게 되는데, 피부나 근육은 물론이고 눈이나 뇌같이 중요한 곳도 흔히 침범한다.
별 문제가 안 되는 성충과 달리 유충은 대부분 증상을 일으키는데, 뇌를 침범한 경우엔 간질발작을 일으키고, 심한 경우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수십 개의 유충이 뇌를 침범한 사진을 보면 ‘아, 정말 삼겹살을 익혀 먹어여겠구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얼마나 악명이 높았으면 유충인데도 유구낭미충이란 고유의 이름을 부여받았을까?
“브루터스, 너마저도!”로 유명한 줄리우스 시저(율리우스 카이사르, Gaius Julius Caesar BC 100~BC 44 )는 50세가 됐을 때부터 간질발작을 시작했단다.
입에 거품을 물면서 갑자기 쓰러지는 일이 잦았다는데, 세익스피어 작품집 ‘줄리우스 시저’ 1막 2장에도 시저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는 내용이 기술되어 있을 정도다. 원래 간질이란 건 어릴 적에 시작되는 경우가 많으니 시저의 간질이 유전적인 건 아니다.
그렇다면 왜? 시저가 간질을 시작하기 몇 년 전에 이집트에 다녀온 것에 주목하자. 이집트는 갈고리촌충의 유행지로, 시저가 거기서 어떤 형태로든 갈고리촌충의 알을 먹었고, 그로 인해 간질이 생겼다는 게 한 학자의 추측이다.
3우리나라 삼겹살은 안전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돼지에서 유구낭미충을 보는 건 이제 불가능하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나라 돼지들은 더 이상 사람의 변을 먹지 않으며, 우리나라가 워낙 검역을 철저히 하는지라 그런 돼지는 검역과정에서 걸린다.
사실 유구낭미충은 크기가 1-2센티 가량 되는 하얀색 벌레라, 근육에 있으면 쉽게 눈에 띈다. 돼지 키우는 사람들도 이 벌레에 대해 잘 알고 있어서 ‘쌀알 든 돼지’라고 부른다는데, 이런 돼지가 국내에서 발견된 건 1990년이 마지막이었다.
소위 ‘마지막 쌀알 든 돼지’는 서울의대 기생충학과에 팔렸는데, 교수와 연구원들은 돼지에서 분리한 유구낭미충을 빵에 싸서 먹은 뒤 나중에 대변에서 충체를 꺼내 표본으로 만들었단다.
물론 다른 나라 삼겹살엔 유구낭미충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탄자니아는 돼지의 15-30%가 감염되어 있고, 중국은 5.4%, 베트남의 감염률은 0.5-1%다.
이런 곳에서 삼겹살이 수입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있을 테지만, 우리나라는 오래 전부터 유구낭미충이 없는 나라에서만 삼겹살을 수입하고 있다는 게 검역 당국의 말이니, 외국에 가서 삼겹살을 덜 익혀 먹는 건 위험한 일이겠지만 적어도 우리나라에선 삼겹살을 적당히 익었을 때 먹어도 될 듯하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에서 유구낭미충증이 발생하지 않는 건 아니다. 문헌을 보면 1990년 이후에도 유구낭미충증 환자는 지속적으로 발생했고, 2000년 이후에도 매년 몇 건씩의 증례가 보고되고 있다.
왜 그럴까? 유구낭미충은 어느 조직에 가든지 주위에 염증을 유발하기 마련이다. 염증이란 기생충에 대한 우리 면역체계의 공격인데, 그런다고 기생충이 그 정도의 공격에 사망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달리 갈 곳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한 마디로 서로 피곤한 상황, 결국 기생충은 면역계와 대타협을 한다. 두꺼운 캡슐 안에 들어가 조용히 살 테니, 이제 그만 좀 하라고. 그렇게 되면 염증은 줄어들고, 기생충과 면역계는 서로 편해진다. 이 상태가 수년~수십 년까지 간다.
기생충은 불사의 존재가 아닌지라 결국은 죽고 마는데, 그 경우 기생충을 둘러싼 캡슐이 와해되면서 기생충의 단백질이 밖으로 배출된다. 자신에 대한 공격이라 판단한 면역계가 휴전상태를 깨고 다시 공격을 개시하고, 이 전투로 인해 우리 몸은 여러 가지 증상에 시달린다.
유구낭미충증 환자가 시시때때로 발생하는 건 이 때문인데, 이건 우리나라의 삼겹살이 과거에 위험했다는 의미일 뿐 지금 위험한 건 아니다.
4민촌충과 선모충
그렇다면 육회는 어떨까? 민촌충도 알이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 유충으로 인한 피해를 주지 않을까?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직까지 민촌충은 갈고리촌충처럼 유충이 사람에게 증상을 일으킨 예가 없다.
민촌충의 알을 먹어봤자 부화되지 않고 대변으로 배출된다는 뜻이니, 육회를 먹을 땐 기생충 때문에 몸을 사릴 필요가 없다. 끝으로 선모충(Trichinella spiralis)에 대해서도 잠깐만 언급하자.
선모충은 유구낭미충처럼 유충이 근육을 비롯한 여러 장기를 침범해 증상을 일으키는 기생충인데, 언론보도를 보니 삼겹살을 구울 때 쓴 젓가락을 입에 가져가면 선모충에 걸릴 위험이 있단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발생했던 모든 선모충 사례는 오소리나 멧돼지 등 야생동물을 날것으로 먹어서 감염된 것일 뿐, 삼겹살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중국이나 태국 같은 나라에선 돼지고기를 통해 선모충 감염이 이루어질 수 있지만, 적어도 우리나라 돼지는 선모충으로부터 안전하다. 늘 아낌없이 주기만 하는 우리나라 돼지에게 고마움을 가져야 할 이유다.
참고문헌
1. Was Julius Caesar’'s epilepsy due to neurocysticercosis? Fabrizio Bruschi. Trends in Parasitology September 2011, Vol. 27, No. 9: 373-374.
2. Taenia solium taeniosis/cysticercosis in Asia: epidemiology, impact and issues. Vedantam Rajshekhar, Durga Dutt Joshi, Nguyen Quoc Doanh, Nguyen van De d, Zhou Xiaonong. Acta Tropica 2003; 87: 53-60.
3. Taenia solium cysticercosis. Héctor H García, Armando E Gonzalez, Carlton A W Evans, Robert H Gilman. Lancet 2003; 362: 547–56.
4. Ocular cysticercosis: an unusual cause of ptosis. Basu S, Muthusami S, Kumar A. Singapore Med J Case Report 2009; 50(8) : e309
5. Cysticercosis of the Fourth Ventricle Causing Sudden Death: A Case Report and Review of the Literature. Tibor Hortobágyi & Ali Alhakim & Olaf Biedrzycki Vesna Djurovic & Jeewan Rawal & Safa Al-Sarraj. Pathol. Oncol. Res. 2009; 15:143-146.
6. http://ghinews.kr/news/news_view.html?fcode=02&fcode2=&news_code=02&read_no=17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