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아와 모체를 연결한다

태반

태반을 통해 태아와 모체가 연결된다.

아이의 탄생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짐작하기 어려운 체험을 제공한다. 온몸이 찢기는듯한, 배가 눌려 터질 듯한, 허리가 끊어져나갈 듯한 극한의 고통과 함께 아이가 몸 밖으로 밀려나오는 순간, 거짓말처럼 통증은 사라지고 날아갈듯한 가벼움과 희열을 경험하게 된다.

출산은 아이의 탄생이 목표이므로 아이가 태어난 뒤에는 이제는 '끝났다'라는 느낌에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한 홀가분함과 해냈다는 충만감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출산은 끝나지 않았고, 오히려 가장 위험한 고비가 남아 있다. 아직 아이의 탯줄은 뱃속의 태반과 연결되어 있고, 태반이 몸 밖으로 완전히 배출되는 후산(afterbirth)이 끝나야 진정으로 출산이 끝나기 때문이다.

1태반, 태아를 정착시키는 닻

태반(placenta)이란 단공류와 유대류를 제외한 포유류의 임신 중 발생되는 조직으로 태아와 모체를 연결해 태아가 모체 속에서 생존 및 성장할 수 있게 하며 태아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포유류 중 단공류(오리너구리 등)가 알을 낳는 것과 유대류(캥거루, 코알라 등)가 발달이 극히 미숙한 새끼를 낳아 육아낭에서 키우는 이유는 이들의 태아는 태반을 잘 형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태반이 존재하기에 엄마와 아기는 한 몸 속 두 집 살림이 가능한 것이다. 태반 조직의 대부분은 아기로부터 유래된다.

인간의 배아는 수정 후 4-5일 정도 지나면 안쪽에 덩어리가 달린 주머니 모양의 배아, 즉 주머니배(포배, blastocyst)가 되는데 이 때 안쪽의 덩어리진 세포는 훗날 태아로 자라나며, 바깥쪽의 주머니(영양막, trophoblast라 한다)를 형성하는 부위의 세포가 태반으로 자라나 모체의 자궁속막과 결합해 태아와 모체 사이를 중개한다.

캥거루의 태아가 육아낭에서 크는 이유는 완전한 태반을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출처 Gettyimage>

주머니처럼 생긴 영양막은 태아가 자람에 따라 태아를 둘러싼 일종의 주머니, 즉 융모막주머니를 형성한다. 이 때 융모막주머니의 표면에는 융모막융모(branch chorionic villi)라는 매우 빽빽한 잔털같은 구조물들이 보인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태아는 수정 후 8주(임신 10주) 경에는 융모막 전체가 융모로 뒤덮였다가 점차 다른 부위의 융모는 퇴화되고 자궁과 들러붙은 부위의 융모만이 더욱 빽빽하게 발달하여 태아를 자궁벽에 단단하게 부착시킨다.

대부분의 자연 유산이 임신 12주 이전에 일어나며 그 이후로는 유산율이 감소하는 이유는 이 융모막융모들이 자궁벽에 단단하게 부착되는 시기와 관련이 깊다.

2태반은 영양물질과 호르몬을 합성한다.

태반은 태아를 자궁벽에 정착시킬 뿐 아니라, 임신유지를 위한 다양한 호르몬을 합성한다.

이렇게 형성된 태반은 임신 기간 내내 태아에게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태반의 역할은 영양물질 합성, 호르몬 분비, 가스와 영양물질 교환 등 크게 3가지로 알려져 있다. 흔히 우리는 태반이 모체와 태아 사이의 물질 교환만을 중개한다고 알고 있지만, 태반은 대사 작용을 통해 글리코겐과 콜레스테롤, 지방산을 합성하여 태아가 이들 물질을 에너지원과 세포 분열시 영양분으로 이용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또한 태반은 다양한 호르몬을 합성해 임신을 유지시키는데 대표적인 것이 사람융모막생식샘자극호르몬(human chorionic gonadotropin, 이하 hCG)이다. hCG는 아직 태반이 제대로 형성되기도 전인 수정 2주 경부터 분비되므로 자가 임신 진단 시약의 검출 성분으로 이용되곤 하는 호르몬이다. hCG는 황체가 퇴화되지 않게 하여 황체가 계속 황체호르몬을 계속 분비하게 만든다.

말 그대로 노란색의 주머니 모양의 황체는 배란된 난자를 싸고 있던 조직으로, 여기서 분비되는 황체호르몬 프로게스테론은 자궁벽을 두텁게 하고 월경이 일어나는 것을 막아 임신 유지에 필수적이다.

태반은 임신 초기에는 hCG를 통해서, 임신 중기 이후부터는 아예 스스로 프로게스테론을 합성해 임신을 유지시킨다. 이밖에도 태반은 사람태반젖샘발육호르몬(human placental lactogen, HPL), 사람융모막갑상샘자극호르몬(human chorionic thyrotropin) 등 다양한 호르몬을 분비하여 태아가 자궁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3태반은 모체와 태아의 물질교환을 중개한다.

이처럼 태반은 다양한 물질을 만들어내 태아의 생존을 돕지만, 태아가 제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태반에서 만들어지는 물질만으로는 부족하다. 따라서 태아는 모체로부터 다양한 물질을 공급받아야 하는데, 이 과정을 중개하는 것도 태반이다. 먼저 태아는 태반을 통해 모체로부터 산소를 공급받고, 대신 쓸모없는 이산화탄소를 내뱉는다. 이밖에도 모체는 물과 포도당, 아미노산, 비타민, 철분을 포함한 무기질, 호르몬과 항체 일부를 태아에게 공급하고, 태아로부터 노폐물을 건네받아 대신 몸 밖으로 버려준다.

엄마가 태아에게 전해주는 물질 중 특히 흥미로운 것은 항체이다. 엄마는 자신이 가진 항체들을 태아에게 나누어 줌으로써 무균 상태의 자궁 속에서 성장한 태아가 각종 미생물들이 득실거리는 환경 속에 태어나더라도 어느 정도 면역력을 확보할 수 있게 만든다.

하지만 엄마의 항체가 모두 태반을 통과할 수 있는 것은 아니어서 태아는 디프테리아, 천연두, 홍역 등에 대항하는 항체는 출생 이전부터 가지고 태어날 수 있지만, 백일해나 수두에 대한 면역력까지는 확보하지 못한다. 이런 식으로 스스로 항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엄마에게서 항체를 건네받아 면역성을 지니는 것을 수동면역(passive immunity)이라 하는데, 수동면역은 태어난 이후 몇 개월이 지나면 없어진다.

흔히 아이들이 생후 6개월을 고비로 감염성 질환에 잘 걸리는 것은 엄마에게서 받은 수동면역이 사라지는 기간과 스스로 면역성을 확보하는 기간 사이의 공백으로 인한 것으로 파악된다.

모체로부터 태아로 전해지는 물질은 태반을 통한다. 산소를 공급하고 이산화탄소를 내뱉는 것도 태반을 통한다.

4태반의 선택적 투과성

태반은 알코올을 통과시킨다. 따라서 임신 중 음주는 금물이다.

엄마의 항체가 모두 아기에게 전해지지 않는 것은 태반이 일종의 선택적 투과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선택적 투과성이란 특정한 물질만을 선택적으로 통과시키는 성질을 뜻한다. 선택적 투과성은 태아의 생존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태아의 생존에 해가 되는 물질이 태반을 통해 어느 정도는 걸러지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선택적 투과성 덕분에 태아와 모체는 ABO식 혈액형이 달라도 공존이 가능하다. 태반이 적혈구 및 ABO식 혈액형을 인식하는 항체를 통과시키지 않기 때문에 태아와 모체의 혈액형 차이로 인한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태반의 선택적 투과성은 그다지 깐깐한 편은 아니어서 실제로 많은 종류의 약물과 중금속, 호르몬과 바이러스 등이 별다른 장애 없이 태반을 통과하며, 이 중에는 태아에게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물질들도 다수 포함된다. 대표적으로 엄마가 음주를 하는 경우이다.

술의 주성분인 알코올은 아무런 장애 없이 태반을 통해 태아에게 전달되어 태아에게서 발달이상과 정신 결핍을 가져오는 태아알코올증후군(fetal alcohol syndrome)을 일으키곤 한다. 미국의 경우, 선천적 태아 정신결핍의 가장 큰 원인을 차지하는 것이 태아알코올증후군으로 알려졌을 정도로 음주가 태아에 미치는 악영향은 크다.

이소트레티노인(Isotretinoin)성분의 여드름치료제. 임신 중에는 먹어서는 안 된다. <출처: (cc) Jpogi e André Teixeira Lima>

또한 항생제 중 테트라사이클린은 태아의 치아를 변색시킬 수 있고, 스트렙토마이신은 청력 감퇴를 가져온다는 보고가 있다. 여드름 치료제 속의 레티노산 성분은 신경정신장애를 일으킬 수 있으며, 탈모치료제 성분인 피나스테라이드로 인해 생식기 기형이 유발되기도 한다. 이밖에도 다양한 종류의 약물과 수은, 납 등의 중금속, 니코틴 등은 태아에게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고, 심지어 엄마가 감염된 미생물이나 바이러스가 태아에게 영향을 주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풍진 바이러스로 엄마가 임신 중 풍진에 걸리게 되면 백내장과 청각장애, 심장 결함 증상을 보이는 선천성풍진증후군(congenital rubella syndrome)을 가진 아기가 태어날 수 있으므로, 임신 전에 미리 풍진 항체를 검사해 임신 중 풍진에 걸릴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이 좋다. 또한, ABO식 혈액형과는 달리 Rh혈액형과 관련된 항체는 태반을 통과할 수 있어 모체가 Rh음성, 태아가 Rh양성 혈액형일 경우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5태반, 그 엄청난 생명력

비록 완벽하지는 못하지만 태반은 임신 기간 내내 태아의 생존과 성장을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그리고는 임신 기간이 끝나 태아가 무사히 태어난 이후에는 자궁벽에서 탈락하여 몸 밖으로 배출됨으로써 그 간의 고단했던 임무를 마친다. 인간을 제외하고 태반을 만드는 포유류들을 후산으로 배출된 태반을 먹는 경우가 많다.

이는 출산으로 인해 손실된 영양분을 보충하고 출산의 흔적을 지워 천적으로부터 새끼를 보호하기 위한 본능적인 행동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인간의 경우에는 이럴 필요가 없기에 대부분 땅에 묻거나 태워서 폐기하곤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태반 속에 함유된 물질들의 존재가 속속 밝혀지면서 본연의 임무를 완료한 태반의 위상이 달라지고 있다.

물론 옛사람들도 태반에 대해 아예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고대 그리스의 의사 히포크라테스도 태반을 약재로 이용했다고 하며, 동양에서도 태반을 '자하거'라 하여 약재로 이용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긴 하지만, 인체에서 유래되었으며 아무 때나 구할 수가 없다는 재료의 특성상 활용 빈도가 그다지 높지는 않았으리라 추정된다.

하지만 현대 과학은 태반 속에 세포 성장과 활성에 도움이 되는 세포성장인자와 사이토카인(cytokine) 성분들이 풍부하게 들어 있음을 밝혀냈다. 태아가 수정되어 태어날 때까지의 생존과 생장을 전담 마크하는 것이 바로 태반이기에 이러한 성분이 풍부하게 들어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태반의 이런 특성에 주목해 이를 임상적으로 응용하는데 처음으로 성공한 것은 일본에서였다. 1959년 일본에서는 사람의 태반에서 간세포의 재생을 도와주는 물질을 분리해 간경화 치료제를 만들어내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는 국내에서도 수입되어 이용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태반이 간경화치료제로만이 아니라 갱년기 증상 개선제, 피로 회복제, 주름 제거제, 미백제 등의 다양한 이름이 붙여져 다각도로 팔리고 있다. 분명 태반에 유용한 물질이 많이 든 것은 사실이고, 이 것이 인체에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예상도 충분히 가능하지만,

각각의 효능에 대한 객관적인 검증과 기전, 부작용 등에 대해서는 아직 연구가 부족한 실정이라 지나친 남용에 대해서는 우려가 앞선다. 지나친 욕심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무모함으로 귀결되기에, 현대적 의미의 황금거위가 되어가는 태반에 대한 현명한 대응이 필요할 듯 하다.

이은희 / 과학저술가
[하리하라의 생물학 카페], [과학 읽어주는 여자], [하리하라의 과학 블로그] 등 많은 과학 도서를 저술하였고, 2003년에 과학 기술도서상을 수상하였다. 연세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과학기술학 협동 과정에서 박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